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성강 전투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[[고창 전투]]에서 역전승한 고려가 주도권을 잡고 지방호족 포섭이 큰 성과를 거두어 갈수록 고려의 손을 들어주는 지역이 늘었다. 931년에는 그예 경순왕이 왕건에게 순(順)하면서 신라 왕이 고려 왕의 신하가 되는 큰 사건이 벌어짐에 따라 대세는 확실히 기운 듯 했다. 반면 백제는 몰락이 가속화되는 과정이었다. 후백제는 고창 전투에서 대패한 후 왕건이 해로를 통해 나주를 차지했던 것처럼 해상전을 시도한다. 932년 고려는 [[평양|서경]]을 건설하고, [[혜종(고려)|왕무]]를 보내 북방을 순수하는 등 국가 정비 및 북방 평정에 힘을 쓰고 있었다. 당시 충청도의 대호족인 공직이 백제를 배신하고 고려에 항복했으며, 왕건은 그의 아들을 자신 친척의 딸과 결혼시킨 뒤 품계와 봉토를 주며 크게 환대했다. 또한 공직의 조력을 받아 백제 일모산성을 공격했다. 이뿐만 아니라 많은 호족들이 견훤을 피해 왕건에게 투항하자 견훤이 분노하여 공직의 아들과 딸의 발목을 끊어 걸을 수 없게 만들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